[이슈프리즘] '적과의 동침'이 대세인 시대

입력 2023-08-27 17:55   수정 2023-08-28 00:14

지난달 17일 일본 나가노현 지노시 쇼코지에서 열린 교통안전 기원 대법회. 도요타 내부 행사에 스즈키, 마쓰다, 스바루 등 경쟁 업체 최고경영자(CEO)들이 동참했다. 스즈키 도시히로 스즈키 사장과 오사키 아쓰시 스바루 사장은 처음 참석했다.

스즈키(60만 대)는 작년 일본 승용차 내수 판매에서 도요타(129만 대)에 이어 2위에 올랐다. 4개사는 자본과 연구개발(R&D) 등에서 얽혀 있다. 도요타는 스즈키 지분 4.9%, 마쓰다 5.1%, 스바루 지분 16.8%를 보유하고 있다. 스즈키와 마쓰다 역시 도요타 지분을 갖고 있다.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 회장 등은 인근 다테시나산에서 4년 만에 열린 ‘2회 다테시나회의’에도 함께했다. CEO들은 교통안전은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야 할 것으로 ‘나카마 즈쿠리’(동료 만들기)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전·친환경 기술 확보를 위해 손잡은 것이다.

국내에서도 공급망 등에서 다른 그룹 계열사 간 제휴가 확산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4일 83형(210㎝) 4K OLED TV를 국내에 출시했다. LG디스플레이의 OLED 패널을 사용했다. 삼성에 삼성디스플레이가 있고, LG디스플레이가 LG전자 계열사란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현대자동차는 삼성의 자율주행 반도체와 SK의 배터리, LG의 OLED 전장 제품을 공급받고 있다. 이런 모습은 선대 회장 시절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삼성 현대차 등 주요 그룹은 자동차 반도체 건설 등 사업 곳곳에서 충돌했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어느 정도 정리된 게 지금의 모습이다.

하지만 같은 업종 내 경쟁사 간 피 튀기는 싸움은 여전하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14일 총 8000억원 규모의 차세대 군함 건조사업 수주 결과를 놓고 방위사업청에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 대상은 방사청이지만 한화오션이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것과 관련해서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지난 5월 에어컨 시장 점유율과 화재 사건 등을 놓고 공방을 벌였다. 2014년에는 세탁기 파손 사건으로 소송전도 불사했다. 출혈 경쟁으로 인한 ‘상처뿐인 영광’의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선 3사는 2010년대 초반 저가 수주에 나선 결과 작년까지 11년 연속 동반 적자 수렁에 빠졌다.

일본은 위기 때마다 ‘히노마루(일장기) 연합군’을 결성했다. 일본 반도체 연합인 엘피다반도체를 비롯해 재팬디스플레이, JOLED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쇠락 직전 설립된 탓에 경쟁력 회복이 쉽지 않았다.

최근 경쟁사 간 제휴에 관심이 높아진 것은 산업 대변혁기 AI(인공지능)·친환경 등 신기술 개발을 위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15조원 이상을 R&D에 투자한 ‘도요타 연합군’이 탄생한 이유다. 중복 투자를 막고 규모의 경제를 위해서다.

국내 내수 시장을 놓고선 경쟁이 불가피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해외에서는 고민해 볼 일이다. 무턱대고 치고받고 싸우기엔 글로벌 경영 여건이 너무나 심각하다. 혼자서는 기술 확보가 어렵고, 첨단기술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네이버와 카카오가 고성능 생성형 AI 개발을 위해 돈과 머리를 합쳤으면 어땠을까. 어차피 MS·구글보다 한발 늦게, 그것도 ‘내수용’이란 지적을 받는 AI 서비스를 내놓을 바라면 말이다. 총 60조원 규모의 캐나다 잠수함 수주를 위해 ‘HD현대-한화오션 연합군’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적과의 동침’이 대세인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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